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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의 교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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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18-08-07 11:24 조회1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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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의 교회 

*이어지는 글입니다.

 

 

3. 대화에 초대하고 육화되게 하는 평신도의 가르침이라는 과제

 

위에 언급한 것들을 자연스럽게 종합해보면 평신도의 교회는 평신도의 가르침이 등장하고 그것을 인식함을 의미합니다. 나는 교계와 평신도 사이에 일종의 대립각을 세우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 평신도들도 고유하게 가르치는 영역이 있다는 것입니다. 교계의 가르침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고, 더욱 실제적인 삶으로 가져오고, 인간의 삶에 녹아 들어가게 하고, 이를 위해 문제들을 만들고, 삶 자체로부터 우러난 현명한 충고로 삶을 풍요롭게 하는 가르침입니다. 아마도 그렇게 되면 가르침의 권위가 떨어지고, 물타기 하고 혼란스럽고 등등이 일어난다고 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서는 앞서 언급한 것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우리는 대립하기보다는 늘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일치하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통합이라는 것이 철학적-신학적-영적 벽돌들을 매일의 삶에 위에서부터 아래로 압박해 누르듯이 내리누르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통합이란 지성과 감성을 새로운 가능성으로 향하도록 하며 이를 위해서는 오직 진실한 체험과 대화, 어려움을 평가, 안팎의 비판들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는 아들과 겪었던 체험 하나를 나누고 싶습니다. 제 아들은 미사 전례와 계명들, 도덕성 등에 대해 무척이나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나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교회는 우리를 하나로 모으고 우리를 이끌어갈 교황님이 필요하단다. 교회에는 우리의 방향을 잡아주는 가르침이 필요하단다. 이 가르침들이 우리 스스로만은 풀 수 없는 어려운 문제들을 연구하고 성찰하게 해준단다. 교회에는 걱정하지 말아라. 넌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건 안 해도 된단다라고 자식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말해줄 수 있는 아버지들이 필요하단다. 그리고 교회는 교황님과 가르침, 아빠와 아들들 모두로 구성되어 있지 이중 하나만으로 이뤄질 수는 없단다. 그리고 또 교황님은 아버지가 될 수 없고, 아버지의 가르침이 교회 교계의 가르침에 배치되는 것이 아니란다. 만약 네 아빠가 교황님처럼 너에게 말을 하려고 한다면 아마도 아주 완고해질 것이란다.” 이런 얘기들은 어쩌면 전통적인 가르침과는 배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내용은 매우 필요한 것들이고 믿는 이들의 일상생활의 가르침에서부터 나온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젊은이들의 경우에는 일요일 미사 참례를 다양한 형식으로 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라고 느낍니다. 젊은이들이 미사에 참례하고 무언가를 얻어내는 것은 때로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관계자가 아니라 교회 안에서의 아버지로서 저는 일요일에 미사 참례하기에 대해서 계속해서 얘기하다가 결국 가족 안에 갈등을 일으키기 보다는 네가 미사참례를 하는 날이 주님의 날인 일요일이면 좋겠고, 네 삶 안에 주일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라고 말해줄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해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나갈 지 알 수 있도록 좀 더 깊은 진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최근, 2년 전 대학을 졸업한 한 엔지니어와 대화하면서 이 모든 것에 대해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는 일을 해갈수록 그가 대학에서 배운 모든 것들이 불완전하고 추상적인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그는 대학을 다니는 동안 연구했던 문제로 자주 되돌아가는데 이제는 실재하는 문제라는 측면, 뭔가 잘못되었다라는 측면에서 보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렇다고 그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너는 정말로 이 실재하는 문제들을 해결할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이고, 창의성과 실제적인 감각을 이용해서, 너에게 주어진 자원과 상황적 한계를 판단하면서 자신의 지식을 활용하여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교계의 가르침과 제가 말씀드리는 평신도의 가르침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를 보완하는 것이고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려고 애쓸 때 평신도의 삶에 주님의 성령이 함께 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가르치는 교계에도 마찬가지의 주님의 성령이 함께 합니다. 또한 우리는 대부분 교계도 평신도도 흠 없이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함께 함으로써 따로 있을 때보다 부족함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완전무결해지는 것보다 함께하는 신의가 더 중요합니다.

 

4. 교회에서 더욱 중요한 주인공으로서 평신도라는 과제

 

평신도의 교회라는 것은 또한 교회가 평신도들의 활동의 장이라는 의미입니다. 교회 밖에서, 즉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평신도의 역할은 자주 강조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주제이고 다음 글에서는 이것을 다루려고 합니다. 하지만 세상 속에서 평신도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과 관련해서 선함으로 가장한 어떤 유혹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어떤 사람은 이를 더 부각시켜 세상은 평신도에게 속하고 교회는 수도자와 성직자에게 속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교회 안에서 평신도의 중요한 역할에 대해서 많은 예를 가지고 있습니다. 수도자와 성직자들이 세상에서 행하는 중요한 역할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 평신도의 선도적인 역할이라는 주제가 등장하게 되며, 이것은 신비이며 친교이고 사명입니다. 세상에 대한 교회의 사명에 핵심적으로 중요하게 참여하는 것뿐만 아니라 - 이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 한편으로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평신도들이 갖는 진지하고 피할 수 없고, 빠져나갈 수 없는 책임이 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저희는 주교 회의가 끝난 후 교회와 세상 안에서 평신도의 성소와 사명이라는 긴 제목의 글을 펴낸 것입니다. 사도들이 세운 교회에 보다 더 충실한 교회를 만들기 위해 일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르침과 단순한 삶의 방식, 예언자적인 선물과 충실한 사제직 의식을 교회의 중심부로 가져가야 합니다. 우리는 참여와 대화를 장려하는 교회의 건물 안에서 협력해야 합니다. 교회는 충분한 공간을 가짐으로 주님이 평신도에게 주신 성령의 풍요로움이 드러나게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 냉담자들, 젊은이들과 소외된 사람들과 만나면서 겪는 어려움과 모순, 그리고 우리가 받는 모든 비판들을 교회로 가져오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몫입니다. 교회 조직과 재정을 건전하고 투명하며 효율적이고 일관되게 만들도록 돕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사제들은 평신도들을 신앙 안의 성인(成人)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교회 안에 평신도들의 참여는 그저 교리교사로 참여하거나 미사에서 성체를 분배하거나 감사를 실시하는 정도로 제한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심장에서 살아가는 성인(成人)으로서의 책임과 주인공으로서 역할은 대부분 세상의 눈에서 우리의 신뢰성에 달려 있고 평신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구체적인 상황에서 살아가는 핵심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피하고 미루는 것을 세상 안에서 증거하며 살 수는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새로운 영역을 만들고 일하는 새로운 방식들을 만드는 것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평신도인 우리들이 스스로 어른으로서의 위상을 세우고 교회 안에서 주인공으로서의 역할을 맡아 우리의 에너지와 노력, 재능과 자원 등등을 교회에 헌신하겠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린 모든 것은 자기긍정을 추구하는 청소년의 관점이나 사회적인 자기 정당화의 관점에서 분석되거나 살아나갈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와 결코 분리될 수 없이 하나가 된 교회의 사랑에서 비롯되어야 합니다. 급하게 서둘러서 결국 파국적으로 끝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과정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성장하는 감각을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교회가 느리게 나아가고 있다는 것과 우리에게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교회의 심장부에 단단히 연결되어 있는 우리 평신도들은 일어나 프런티어를 탐험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또한 교회를 위해서 우리의 꿈을 꾸고, 교회 안에서 일함으로써 이 모든 것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미 몇몇 단체와 본당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교회 안에서 우리 주님의 영을 진정으로 보여주는 것이 되고 더 큰 교회의 짜임새안에서 소통하는 충실한 도구가 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식별이 필요합니다. -끝- 

 

*이 글은 프로그레시오 부록 #59(2004년 12월)에 실린 글로, 당시 CLC 부의장인 Jose Reyes가 2004년 에콰도르 퀴토에서 열린 마지스 프로그램에서 한 연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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