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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 그리스도의 협력자, 활동에서의 동료, 교회에서의 어른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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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18-09-03 17:41 조회1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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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글입니다 -        


             평신도 - 그리스도의 협력자활동에서의 동료교회에서의 어른들​ 

 

 

교회와의 관계

 

이 여정에서 우리는 형제자매가 되고 교회가 된다. 다시 바오로 성인의 말씀을 살펴보면 우리는 평신도로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다른 신자들이 사는 곳이든 우리가 사는 곳이든 어디에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들과 함께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사람들이다. (고린토 112) 세례를 받음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의 삶의 신비, 즉 빠스카 신비에 동참하게 되었고, 같은 빠스카 신비인 교회의 삶에도 동참하게 되었다. 견진을 통해서 우리는 성령의 힘을 받아 친교사명을 보다 온전하고 깊게 이해하며 그에 참여하게 된다. 친교사명은 그리스도의 교회이며 그분의 사명을 계속해서 살아간다. 체험을 통해 우리들은 교회 안에서 살아가고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존경하며 또한 교회에 봉사하는 것이 언제나 쉽지는 않고, 늘 감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많은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말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고 또 실제로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께는 예이지만 교회에는 아니오이다.” 우리는 또 뛰어난 이탈리아 작가인 이냐시오 실론이 말한 이런 논리를 따르고 싶어진다. 당에 속하지 않은 공산당원이고, 교회에 속하지 않은 그리스도인.”

 

가톨릭에는 교계 구조가 있고, 서품 받은 사제들과 남녀 수도자들이 있다. 평신도 가톨릭 신자인 우리들은 이런 교회를 이해하고, 열망과 의지를 갖고 이에 속하고 싶어 한다. 우리는 우리보다 먼저 살아가셨던 모든 남녀 성인들과 우리는 잘 모르지만 신비하게도 교회 안에서 우리와 함께 있었던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하는 교회에 속하고 싶어 한다. 우리는 또한 불편하게 느껴지는 사람들과도, 문제를 일으켰던 사람들과도 함께 하고자 한다. 이런 이해, 열망, 의지는 모두 성령의 활동의 열매이며, 우리는 그리스도와 교회 안에 존재하는 일치, 깰 수 없는 일치를 보고 사랑하도록 이끌린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우리 전망을 키워 나가고, 널리 모든 유형의 사람들을 포용한다. 바로 이것이 우리를 가장 매료시킨다. 우리는 우리가 한 지체이며 구조이고, 교계 구조와 가르침, 감동을 주는 다양한 카리즘과 수도 단체들이 있음을 알고 있다. 또한 우리는 우리 중 어떤 사람이 그냥 편하게 한 말이 공의회의 인준과 동등한 권위를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교황님을 사랑하고, 전례와 전통적인 기도에서 깊은 감동을 받는다. 성 이냐시오의 충고에 따라서 우리는 이런 것들이 우리의 문화적 민감성이나 개인적인 기호에는 맞지 않을 지라도, ‘고해를 하고, 미사에 참례하고, 성무일도나 모든 기도를 바치는 것을 찬양한다.’ (영성수련 354에 있는 규칙들)

 

이 모든 것은 평신도로서 우리가 또한 교회를 가장 견뎌야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미성숙한 엄마 옆에 붙어서서 자라지 않는 아이로 남아있기를 거부한다. 영적 건강의 근간을 이루는 근본적인 자신감을 갖고 자라서 어른이 되어가는 어린이처럼 성스러운 어머니 교회와 관계를 맺고 있으며, 어머니가 살아나가고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자녀들이 점점 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영적으로 어린 초기 단계에서 우리는 귀를 기울이고 믿으며, 받아들이고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견진까지 받은 평신도들이 그저 교리나 강론만 듣고 앉아 있는 것은 충분하지 않으며 때론 이 사실이 우리를 화나게 한다. 청소년기에는 반항하고 균형을 잃을 권리가 있다. 우리는 이러면서 유아적인 확신을 넘어 서고, 틀을 벗어나 새로운 지평과 가능성을 탐험해볼 수 있다. 청소년기에는 엄마 앞에서 고집스럽게 자신의 지식을 주장하기도 하고, 무질서한 애착과 열정을 보이다가도 쉽게 사그라들기도 한다. 청소년들은 예민하고 심미적으로 불만스러워하기도 한다. 이렇게 이 모든 것을 온전히 살아보고, 자신의 한계를 발견하면서 청소년기의 긴장이 해소되며 교회가 가진 어떤 모순이나 과장, 권위의 과도한 집중, 교조주의 등의 문제를 알게 되더라도 어머니 교회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어른이 되는 순간이 온다. 우리는 근본적인 것들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삶에 대해서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고, 우리의 지난 과거와 우리가 살아왔던 것들과 깊이 화해하며, 사도 바오로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갈라티아 51)라고 선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어머니 교회는 다시 젊어질 것이다. 어머니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돌보며, 어머니에게 봉사하고, 조언을 구하고, 어머니의 과거와 근원에 대해 질문하며, 어머니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어른이 된 자녀들을 기쁘고 놀랍게 바라볼 것이다. 어머니는 자녀들이 만들어내는 믿을 수 없는 결실들을 보며 행복해할 것이다. 때때로 이 결실들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들이고, 기존에 없었던 것들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들 안에서 같은 씨앗, 같은 뿌리, 그리고 무엇보다도 같은 그릇, 같은 주인을 알아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불편한 측면, 즉 어머니와 자녀의 죄인됨과 관련해서 살펴보면, 어머니와 자녀들은 서로를 용서하고 이런 용서는 자발적이고 끊임없이 일어날 것이다. 용서는 서로에 대한 수용과 유머와 겸손, 그리고 참으로 투명한 건강하고 현실적인 전망 안에서 이뤄진다. 그리하여 우리 자신과 온 세상이 어머니 교회와 자녀를 믿게 되는 것이다. -끝- 

 

 

*이 글은 프로그레시오 부록 #59(2004년 12월)에 실린 글로, 당시 CLC 부의장인 Jose Reyes가 2004년 에콰도르 퀴토에서 열린 마지스 프로그램에서 한 연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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