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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평신도를 위한 침묵피정 후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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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11-29 11:10 조회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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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으신 주님,

 

여주에서 당신은 투박하고 속정 깊은 친할머니같이 품어주셨다면, 여기 시흥에서는 다정다감하고 살가운 외할머니 같이 품어주셨습니다.

 

낙엽들이 지워버린 숲속 오솔길을 더듬으며 온 뒷동산을 정신없이 쏘다녔습니다. 바람은 제법 쌀쌀했지만 햇살을 밟으며 다니는 길이라 기분 좋게 시원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다 피정의 집 앞뜰에 섰을 때, 빛바랜 잔디위로 쏟아져 내린 은행잎들은 무리를 지어 춤을 추는 나비떼 같고, 구수한 단풍 내음 풍기는 가을 햇살이 그 위로 부딪혀 부서지며 만들어내는 장관은 참으로 눈부시고 아름다웠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해바라기를 하다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께서 저를 지어내실 때 어떤 마음이셨을지, 왜 지어내셨는지를요. 지난 피정 내내 머리로 강요하던 답들이 이제서야 마음으로 느껴졌습니다. ‘세상을 지으시고 보시니 참 좋으셨구나, 참으로 좋으셔서 이 좋은 것들을 보여주시고 누리게 해주시려 나를 지어 내셨구나. 나를 지어 내시면서 내가 누릴 사랑과 행복을 앞서 보시며 얼마나 설레어하시고 기뻐하셨을까.’ 당신은 그런 사랑으로 저를 지어 내셨는데 이제까지 저는 숙제를 하듯 살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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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으신 주님, 일년전 이맘 때 큰 수술을 받고 퇴원하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의사나 병원에서 해줄수 있는 도움은 입원 기간중에 끝나고 퇴원하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오롯이 제 몫이었습니다.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무력함과 통증들이 많이 두려웠습니다. 상처가 아물고 팔다리에 힘이 다시 들어오기까지 하루하루를 견디고 시간을 버텨내야하는 길고 힘든 과정이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일상이 일상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이제까지 당연하게 생각하여 인지하고 있지 못했던 그 모든 것들이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정녕 제 말이 제 혀에 오르기도 전에 당신께서는 모두 아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30년전 엄마 친구 분이 선물해준 가톨릭 동화책들을 통해 저를 당신에게 이끄셨듯이, 이번에는 제가 좋아하는 선배언니를 통해 복음 산책서들을 보내 주시면서 어둠의 골짜기를 걷는 그 시간들을 준비시키셨습니다. 어둠의 골짜기를 당신과 함께 걸으며, 저는 비로소 저를 사랑 가득한 눈으로 지긋이 응시하고 계신 당신과 눈이 맞았습니다. 그 강렬했던 눈맞춤으로 아직도 저는 눈물을 쏟아내곤 합니다.

 

사랑이신 주님. 피정 올 때마다 세상 때가 꼬질 꼬질 묻고, 세상살이에 휩쓸려 꾀죄죄한 몰골로 당신 앞에 선 저를 정성스레 바람으로 씻기고 햇살로 다듬어 주십니다. 피정 집 수녀님들의 손을 빌어 내어주신 정성스런 밥과 따뜻한 잠자리로 몸을 편히 쉬고, 길잡이 선생님들을 통해 당신 말씀에 마음을 맞춥니다.

 

입을 닫으니 머리가 닫히고, 머리가 닫히니 참으로 마음이 열립니다. 마음이 열리니 온 천지에 당신과 저만 오롯이 남습니다. 제 심장과 함께 뛰고 있는, 너무나 일치해서 알 수 없었던, 당신의 심장 박동이 느껴지고 당신의 숨소리가 들립니다. 두껍고 딱딱한 비늘같이 저를 뒤덮고 있던 세상이 뚝뚝 떨어져나가면서 제 안에 계신 당신 모습이 조금 더 선명하게 눈에 들어 옵니다.

 

23일 피정기간 동안 허락해 주신 감사한 시간을 특별히 더 기억하며, 일상 속에서 당신 사랑에 대한 기억을 늘 새롭게 하겠습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20171117~19일 시흥 성바오로 피정의 집에서 진행된 [평신도를 위한 침묵피정]에 참가한 신수정 리디아님의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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