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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아마존 프로젝트 파견회원의 나눔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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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1-10 17:10 조회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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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프로젝트 파견회원의 나눔>


죽음과 부활의 소리

 

우리의 삶을 위한 하나의 새로운 샘을 발견하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아래로 깊이 내려가야 한다. 말라버린 텅 빈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래로 내려가야만 한다. 변화를 가져다주는 힘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의식의 세계, 이 지상의 세계가 오직 깊은 곳이다.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신뢰, 자신을 믿고 내맡기는 것, 자신을 내놓는 것, 일이 생겨나도록 두는 것 등을 거치게 된다. 내가 이 길을 갈 수 있는 것은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서가 아니다. 오직 내가 불림을 받을 때 갈 수 있는 길이다. 오직 생명의 소리를 듣는 사람만이, 그 소리를 듣고 순응하는 사람만이 깊은 곳에서 생명의 샘을 발견할 수 있다.” 안셀름 그륀, 아래로부터의 영성

 

사순과 부활 시기, 죽음과 부활의 시기. 생명의 역동성과 영적으로 혹은 내적으로 우리가 인간으로서 갖는 역동성 덕분에 우리는 절대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속해서 움직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행복과 심오한 기쁨을 누리기도 하고, 슬픔과 고독의 순간들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차분하고 조용한 시간을 보냅니다. 시간이 흐르고, 날이 지나고 달이 흘러가면서 날씨가 변화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세 국가의 국경이 맞닿는 이 지역에서 저는 그런 내적 움직임을 더 명확하게 알아차리고 있습니다. 아마존이란 지역 특성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습니다. 흘러가는 강물은 결코 똑같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저는 여전히 식물들이 싹 트는 소리, 꽃 피는 소리, 과일이 영그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동물들이 태어나는 소리, 새들이 흐느끼고 슬피 우는 소리, 물고기나 다른 동물들이 죽어가는 소리, 나무가 베어지는 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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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님께서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이 자연과 이렇듯 직접적으로 만나가기 때문에, 이번 사순과 부활 시기에 저는 제 안에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것, 제가 적응했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갖는 신체적인 한계로 인해 슬픔을 느낄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곤충들에게 물렸는데 몸이 예전과는 다르게 반응하며 다리가 부어올랐습니다. 입 안에 염증이 생겨서 뺨이 부어오르고 아픕니다. 치아에도 통증이 있어서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주 심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로 인해 저 자신이 참으로 약하게 느껴졌고, 집에 돌아가서 가족들과 만나고 가족들의 돌봄을 받고 싶다는 갈망이 커졌습니다.

 

이런 신체적인 약함과 더불어 슬프고, 화나고, 고독하고, 외롭고, 기도하기 어려운 시기에 함께 나타나는 영적 한계가 합쳐져서 제 안에서 내 머리를 식힐 곳이라곤 없고,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신체적인 힘도, 영적인 힘도 사라지고, 생명력을 잃고 있다고 느끼는 이런 시기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냥 이를 흘러가게 하고, 영혼의 깊은 곳으로 뛰어드는 것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십자가 위에 달리셔서 죽음을 맞닥뜨린 예수님은 다양한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어떤 말들은 비록 더 깊게 가라앉는 것을 뜻하더라도 믿으라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상처와 속임수가 늘어나고, 사랑할 힘은 약해지고, 우리 안의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우리가 잘 모른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지금 하는 것이 지금은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그 하느님을 찾는 것이란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이런 암흑과 침묵과 외로움의 순간에 우리는 스스로 하느님께서 이 모든 것을 통해 나에게 말씀하고 싶어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고,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소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저는 이렇게 약해진 시기에는 나의 시선을 주님께로 돌리고, 이 보물을 찾아 우물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 존재의 깊은 곳에 숨겨진 생명의 샘을 찾고, 폭풍우가 지나간 후 항상 찾아오는 고요함을 발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깊은 곳에서부터 이를 체험하고 나면 새로운 전망이 보이게 되고, 순례의 여정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새로운 가능성이 나타납니다. 이렇듯 약해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래로부터의 영성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그런 죽음을 통해 우리는 약하신 하느님을 발견하게 되고, 가톨릭 신앙에 따라 내가 해야 하는 것과는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르게 느끼는 나에 대한 죄책감을 떨쳐낼 수 있게 됩니다. 신체적인 고통과 싸울 수 있게 되고, “하느님을 믿는다면 이런 식으로 느껴서는 안 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감정적인 고통도 이길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죄도 짓지 않고, 어떤 실수도 하지 않고, 후회하지도 않고, 피곤해하지도 않고, 울지도 않고, 성내지도 않으며 자신이 한 선택이나 여정을 바꾸지도 않고, 항상 기뻐하고, 이 사회가 종교인에게 기대하는 좋은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측면만 보여주도록 프로그램화된 것처럼 보이는 그런 완벽한 신앙인에 대한 고정관념은 찢어버리십시오.

 

이렇듯, 할 수 없다는 것. 이런 약함이 긍정적이란 것이 이제 드러나면서 저는 훨씬 더 건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체험을 통해 저는 그 어떤 것도 저 자신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님을 겸손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을 의식할 때, 제가 느끼는 것과 제가 느껴야 하는 것 사이에서 일어나는 싸움에서 벗어날 때, 피곤해서 결국 무너지고 복종할 때가 바로 제가 제 내적 죽음을 체험하는 때이고, 아버지이자 어머니이신 하느님께서 마치 돌아온 탕자에게 해 주셨듯이 나를 안아주시고 계심을 느낄 수 있는 때입니다. 하느님은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나를 받아주시고 환영하시고, 부드러움으로 나를 채우시고, 돌보시며 사랑하시고 나는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한단다. 내가 너를 좋아하게 만들려고 굳이 뭔가를 할 필요가 전혀 없단다. 나는 너를 알고 너를 사랑하며, 나는 네가 행복하기를 바란다라고 제 귀에 속삭여주십니다. 저는 불사조처럼 잿더미에서 다시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감사하고, 쇄신되었으며,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삶의 체험 안에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는 소리를 듣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목소리가 제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걸어라. 사랑이 있는 한 항상 희망이 있단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나는 결코 너를 떠나지 않는다. 내가 네 눈물을 닦게 해다오. 우리 함께 걸어가자. 새날이 올 때까지 계속 걸어가자. 그리고 다시 저는 이렇게 창조된 만물과 이 삶과 화해하고, 사랑을 담아 이 사명을 살아나가겠다고 맹세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저는 부활절을 맞아 지역 공동체 방문을 재개하였고 그들과 함께 살면서 성주간의 모든 의례를 함께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의 침묵 속에서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었고, 그들과 함께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를 발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저 자신에게는 죽음이라는 것이 삶의 보편적인 과정이며 심지어는 필요한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로욜라에서 영성수련을 한 뒤 저는 한 스페인 예수회원 신부님께 나비 그림을 그려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신부님께서는 제게 나비의 의미를 아느냐고 물으셨고, 저는 모른다고 답했습니다. 저는 그저 나비의 색깔과 연약함, 섬세하게 비행하는 모습이 좋아서 나비를 좋아한다고 답했습니다. 신부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비는 부활을 의미합니다.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탈피의 고통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죠. 예수님께서 죽음의 고통을 겪으셔야만 부활하실 수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이 체험을 통해서 저는 하느님께서 제 삶에서 허락하신 이 작은 탈피 체험의 가치를 배워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중에 더 반짝이고, 가볍게, 더 다채로운 색깔을 띠며 나비처럼 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달 저는 원주민 공동체에서 부활절 의례를 함께 하였고 그들이 이 얼마나 더 기쁘게 부활 전통을 살아가는지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성 토요일에 모든 학생과 청소년 및 어른들은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강에서 함께 목욕하고 수영하면서 엄청나게 시끄러웠습니다. 또 음향 시설을 켜서 흥겨운 음악을 틀었습니다. 그리고 아침 530분쯤 되어서 우리는 함께 묵주기도를 바쳤고, 그 후 함께 아침을 먹었습니다. 밤늦게까지 부활 축하 철야 행사가 벌어졌고, 온 종일 최대 음량으로 음악을 틀었습니다. 원주민들은 그렇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축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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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주간 사목 활동을 마친 후 저는 페루 타라포토 시에서 열린 범 아마존 지역 예수회 프리 포럼에 참가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저는 마우리시오 로페즈 의장님과 마우리시오 버나노 형제님을 다시 만나서 무척 기뻤습니다. 또한 서로 다른 프론티어에서 아마존 지역을 위해 자신의 삶을 투신하는 다른 많은 예수회원과 평신도를 만나서 기뻤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8차 범 아마존 지역 사회 포럼에 참가하였고 아마존 지역과 안데스 지역 여성들을 위한 분과토의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슬프게도 이 분과토의에 남성들이 아무도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안내문에 여성이라고 되어 있었고, 남성들이 여성들의 공간을 매우 존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 참가자가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우리 여성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남성들이 듣는 것이 좋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여성들 역시 남성들의 생각을 듣는 것이 서로를 풍성하게 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이란 주제에 대해서는 아직도 할 것이 많습니다. 다른 분과토의 자리에서 나온 내용을 살펴보았더니 대부분 남성이 연사였고, 참석한 얼마 안 되는 여성들은 목소리도 중후한 강경한 여성들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교회, 직장, 공동체 등 안에서 여성은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나요? 여성은 여전히 소외되고 있고, 기껏해야 공동체나 모임 안에서 간사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기관 안에서 집행부의 위치에 얼마나 많은 여성이 있나요? 때로 저는 여성이 더 많은 모임에 참여합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조율하고 조정하는 역할은 남성들이 합니다.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보다 평등한 사회를 지속해서 만들어 나갑시다.

 

마지막으로, 죽음과 부활의 소리에 관한 이 글의 주제와 관련하여 저는 우리 각자가 스스로에게 우리 공동의 집을 돌보는 것에 관한 질문을 던져보도록 제안합니다. 우리의 공동의 집이 다시 생명으로 부활하도록 하기 위해 작지만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활동으로 내가 기여할 수 있는 것, 즉 내 삶의 방식 안에서 죽게 해야 하는 것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적어도 생명력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읽으시면 아시겠지만, 이번 달 저는 정말 많은 내적 움직임을 겪었고, 하느님께 깊이 감사드렸습니다. 먼 곳에서부터 늘 소식을 보내주시고, 전화해주시며 함께 동반하시는 모든 분께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사랑을 담아 안아드립니다.

 

로​ 

 

 

** 로레나 페레즈(애칭, Lore)는 에콰도르 CLC 회원으로 현재 아마존 프로젝트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세계 공동체의 사명과 일치하는 방법으로 생 프런티어에서 자신의 삶과 활동에 대해 성찰한 것을 매달 나누고 있습니다. 

이 글은 로(Lore)의 열번째 나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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