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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방법 2 - 식별의 기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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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5-13 12:19 조회7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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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방법 2 - 식별의 기도

 

 

세상이라는 거대한 극장에서 식별하기

 

■ 관상의 참모습은, 역사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계획에 순명함으로써 드러난다. 오늘날 이 시대에 발견되는 하느님 역사(役事)의 새로움은 무엇인가? 이 하느님 역사의 새로움에 대한 나의 올바르고 정확한 협력 수단은 무엇인가?

 

“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려고 왔습니다(히브 10,9)” 이 구절은 성부께 향한 예수님의 깊은 태도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식별을 위해서 기도하려는 사람의 내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식별은 자기의 내면을 관찰하는 훈련도 아니며 다른 사람, 혹은 자기 자신의 원하는 바를 얻으려는 이유로 하는 것도 아니다. 그 보다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시는 하느님을 찾고자 하는 단단한 기도의 자세이다(마태 6,8 참조).

 

■ 우리의 내적인 충동 중에서 어떤 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고, 또 그렇지 않은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나라를 이루어가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한 긴밀한 관련성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참된 인식이 뒤따라야만 한다. 

 

또한 식별은 교회적인 차원을 포함하는데 이러한 교회적 차원을 통해 우리는 교회로 더욱 다가설 수 있게 되며 권위로서 봉사하는 교회직무자에게 다가설 수 있게 됨으로써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게 된다

 

■ 식별에서 가난한 이들은 특권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사회를 하나의 극장에 비유해 볼 수 있다. 모든 공연의 구조는 무대 앞자리과 한정된 이를 위한 특별석를 중심으로 마추어져 있다. 사람들은 냉방시설이 잘 되어있는 자리에 편하게 자리잡는다. 조명은 무대 위에 벌어지는 공연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킨다. 청중들은 자리를 잡고 다른 청중들과 함께 공연을 보면서 호응하기도 하고 박수를 보내게 된다. 이 공연을 기획한 감독은 사람들이 원하는 곳에서 공연을 볼 수 있게 안내해 주는 고용인을 채용한다.

 

규칙에서는 벗어난 일이지만 큰 출입구 대신에 공연 준비자용 별도의 출입문을 통해 들어가 본 사람들의 경우에는 공연의 이면을 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연주를 기다리는 동안 공연 연주자의 바싹 긴장된 얼굴을 볼 수 있다. 또 늘상 같은 일을 되풀이 해야하고, 사람들이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공연을 준비해야만 하는 고용인들의 늘 피로에 지쳐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사회를 무대의 앞자리와 별도로 마련된 특별석 입장에서 볼 수도 있고, 공연이 진행될 수 있도록 힘쓰면서도 무대 위에는 오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공간인 고용인들의 출입문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우리들은 이 세상의 극장에서 어느 곳에 서 있는가? 우리의 위치가 우리의 관점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수 있다. 가령, 달동네를 없애는 것은, 입안하고 감독하는 사람들 쪽으로 한발 다가서는 것일 수 있지만, 반면에 이로 인해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과는 대립 관계에 놓일 수 있는 것과 같다. 식별을 할 때, 우리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우리가 어디에 연대의식을 두고 있는지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구원이, 무대 뒤에서 일하는 사람들로부터,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온다고 말하면, 그들은 바보스럽고 우수꽝스러운 말이라고 비웃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일이 현실로 일어났으니, 바로 성령강림절 아침에 그리스도교의 새로움, 전적인 쇄신이 가난한 이들의 열린 문을 통해 이 세상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금 시각이 아침 아홉 시인데 어떻게 술에 취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사람들은 술에 취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예언자 요엘이 예언한 대로 된 것입니다. :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마지막 날에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나의 성령을 부어 주리니 너희 아들 딸들은 예언을 하리라(사도2,15-17).

 

■ 하지만 소외된 이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때, 여기서 복음의 새로움이 밑으로부터 솟아 오르게 된다. ; 이것은 절대로 미리 예견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놀라운 일은 지식이나 권력의 힘, 또한 아이디어와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사람들의 돈에서 나오는 어떤 것도 아니다. 이러한 일은 사람들의 계획이나 생각을 멀리 벗어나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 이런 발견은 우리가 새로운 방식으로 사물을 보도록 촉구한다. 우리는 눈을 들어 관상을 통해서 밝게 드러나는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 볼 뿐만 아니라 또한 사회의 전체상 안에서 그 밑바닥을 볼 수 있어야 한다.

 

■ 바로 여기가, 하느님 나라로 가는 입구임을 발견할 때, 지금 이곳에 대한 봉사를 위해 우리 자신을 관상하고 기쁘게 받아드리며 자신을 준비시키게 된다. 여기에 모호함이 있다면, 이 부분을 정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우리가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의 능력을 뛰어 넘어 이 힘이 자라고 계속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 만일 하느님께서 우리를 “파수꾼”으로 임명하셔서 우리 현실을 바로 보고 “사악한 이들의 악한 행실”을 고발하도록 하시는 것은 하느님께서 이런 이들의 “삶의 방식을 바꾸게 함으로써 그들의 생명을 구원하도록” 원하시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억압받는 이들에게 가까이 있음은 구원(은혜)의 거처가 된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 관상기도에 관한 두번째 글입니다. (프로그레시오 부록 9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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