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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사이의 간극 (the Gap in Between)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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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2-22 15:03 조회43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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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 사이의 간극 (the Gap in Between)

 

 

 

안젤라 첸과 안토니오 황 (Angela Chen and Anthonio Huang)

대만 CLC

  

-이어지는 글입니다.-

 

안젤라

 우리는 삶을 나누는 부부가 되었고, 신언회(SVD)의 마티아스 크리스챤(Matthias Christian) 신부님과 함께 ME코어 팀이 되었습니다. 1997년부터 2007년까지 우리는 버나드 추(Bernard Chu, SJ) 예수회 신부님을 도와 홍콩과 마카오에서 ME를 발전시키는 핵심 부부들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신언회의 제임스 황(James Hwang) 신부님과 함께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시아 ME 회의에 참여하는 우리의 목표는 세계 ME의 정식 회원으로서 가입하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저는 또 로버트 파빙(Robert Fabing SJ) 신부님과 함께 공동으로 그리스도인 가정 상담 서비스 센터를 설립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활동들은 엄청난 작업이었고, 우리는 아시아의 가정 문제들이 어느 정도는 똑같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수준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다종교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고, 급속도로 진행되는 사회 붕괴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안토니오

 우리는 ME 코어 팀에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CLC 회원들입니다. 우리는 초대 프로그램이나 모집 프로그램 등에 대해 논의하기에 앞서 우리의 삶을 나누기 위해 모였습니다. 신뢰와 친밀감이 쌓이면서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의 꿈과 열망을 전해나가게 되었습니다. 안젤라는 1년 동안 외국에서 공부하겠다는 꿈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전 긍정적으로 느끼긴 했지만 주저가 되기도 했습니다... 5년간 식별을 한 후, 그녀는 40세의 나이에 런던에서 석사 학위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가정 교회로서 우리의 삶을 통해 서로를 풍요롭게 하고, 도전들에 직면하고 우리 가정을 돌볼 수 있을 도록 하느님의 은총을 찾을 때 전체 코어 팀에서 저를 지원해주셨습니다. 이 기간 동안의 고양됨과 나눔의 체험을 통해 우리는 결혼으로의 초대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계획하신 것에 완전히 투신하는 것임을 배워가면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CLC 부부들과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오면서 우리는 단순한 공동체 이상이 되었습니다. 가족으로서 모든 노력을 다하고, 함께 하나의 단위로서 하느님의 말씀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ME주말에서 우리가 겪는 어려움들을 돌아봄으로써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신앙을 키워나갑니다. 우리는 젊은 부부들이 은총에 자신을 개방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그들에게 우리의 가치와 믿음을 살아나가는 것의 장점들을 보여주려 애씁니다. “우리는 혼인과 가정을 선택하여야 하는 이유와 동기를 제시하는 데에 더욱 커다란 책임을 느끼며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에 더욱 기꺼이 응답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의 기쁨 35)

 

안젤라

 비록 영국에서의 제 공부는 2003년 벌어진 사스(SARS) 대참사로 인해 결국 완전 실패로 끝났지만, 저는 안토니오의 믿음과 용기에 대해 깊이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책에나온 설명에 따라 삶을 살아가려고 하는 선구자적인 부부들 중 하나였고, 우리 팀에는 모두 젊은 부부들뿐이었습니다. 당시 15년 이상 된 부부는 한 가정뿐이었습니다. 그들도 예전에 교리쇄신 과정을 가르치던 고등학교 교사 부부였습니다. 그리고 1997년 미국에서 버나드 추(Bernard Chu) 신부님이 이 분야에 대해 상당한 실력을 갖추시고 대만으로 돌아왔습니다. 신부님은 중국인들 공동체 안에서 ME 주간을 운영할 수 있도록 인적 자원과 자금을 지원해주셨습니다. 신부님은 영민하고 에너지가 넘치셨으며, 미국에서 신부님께 훈련받은 부부들이 이 모든 새로운 과정들에 있어 우리를 지원할 수 있도록 주말에 대만으로 초대하였습니다. 신부님과 함께 일한 것은 정말 큰 놀라움이었습니다. 신부님은 저에게 결혼 상담을 해볼 것을 권하셨고, 우리가 잘 기획된 목표를 갖게 하셨습니다.

 

안토니오

 신부님께서 우리가 따를 수 있는 부부의 삶을 보여주실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움이었습니다. 혼인 성사라는 주제를 다룰 때 우리는 개요에서 부모성사가 없다는 사실이 좀 불편했지만 결혼을 우선순위에 놓겠다는 약속은 있었습니다.

 

안젤라

 대부분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부모역할의 주 책임은 묵시적으로 엄마에게 있습니다. 여성들은 자녀들의 행복을 이뤄줘야 한다는 말을 듣습니다. 엄마들은 그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도 희생합니다. 저는 그런 전통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은 아니지만 종종 자녀들에 대한 제 의견을 반대하는 배우자와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었습니다. “저는 진정 믿습니다 그러니 믿지 않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제 내면의 기도의 핵심은 이 말씀이었습니다. 엄마로서, 교사로서, 상담가로서 저는 항상 제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지켜보았고, 이들에게 있어 제 역할은 양육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는 한계가 있었고, 끝까지 지키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제게는 안토니오가 아빠로서 독자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해 주는 것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결혼기간 동안 그의 역할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6학년이 될 때 까지 종종 학교 공부에 있어 조언을 주었고 이후에는 스스로 하도록 내버려두었습니다. 저는 항상 엄마로서 그들의 건강과 영혼을 돌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5살이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그들이 음악 수업과 체육 수업을 받도록 했습니다. 음악이 그들의 감정을 표현하게 해주고, 체육을 통해 자신감을 얻게 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안토니오 

 일주일 내내 출장을 다녀오거나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와서 아이들에 대해 물을만한 에너지를 찾기는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저는 집에서는 조용히 쉬고만 싶었습니다. 안젤라는 제가 아이들이 활동하러 가는데 데려다주기를 원했는데, 그 활동들은 제가 어렸을 때는 하지 않은 활동들이었습니다. 전 아이들이란 각자 자기 재능이 있고, 그래서 굳이 그런 것들을 심어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안젤라가 자신이 이루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보상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했죠.

 

안젤라 

 안토니오가 아이들의 방과 후 수업들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힐 때마다 전 정말 미치는 것 같았습니다. 안토니오는 정규 수업과 무관한 곳에 추가로 돈을 쓰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죠. 전 우리가 문제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연한 태도로 제 주장을 고집해야 했습니다.

 

안토니오 

 2002년 안젤라가 학업을 위해 런던으로 가면서 제가 아이들을 돌봐야 했습니다. 당시 제 아들은 6학년이었습니다. 그 체험은 우리 둘 모두에게 매우 낯설지만 소중한 체험이었습니다. 당시는 제 직장인 광섬유 분야에서 아주 중요한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십대인 아들에게 모든 관심을 집중해야 했습니다. 사실 2003년은 온라인 기업들에게 위기가 닥친 한 해였습니다.

 

2004년 말 저는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창업을 했습니다. 전 제 삶에서 첫 번째 우선순위가 가정과 일 중에서 무엇인지 결정해야 했습니다. 전 안젤라가 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 아내는 셋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는데 저는 그녀의 건강이 너무 약해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쉽지 않겠다고 느꼈습니다. 2005년 초 셋째 딸 마리아가 태어났습니다. 다시 아버지됨을 배울 책임을 가져야 할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저였습니다.

 

안젤라

 1년 동안 서로 떨어져 있으면서 우리가 함께 부모 역할을 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해했기 때문에 우리 가정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서로 역할을 바꾸다보니 우리는 아이들이 서로에게 다르게 반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안토니오가 집안일을 훨씬 더 많이 했고, 저는 아이들의 공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했었습니다. 런던에서 돌아오고 난 뒤, 전 식사를 요리하는 것을 더 즐기게 되었고, 안토니오는 10대 아이들의 감정 변화에 직면하려고 애썼습니다. 물론, 이 과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인내심 많은 아버지는 결국 그들의 마음을 얻었습니다. 안토니오는 항상 함께 하는 아버지가 되었습니다.(사랑의 기쁨 177) 셋째 딸이 태어난 이후 우리는 함께 부모 역할을 하는 것을 연습하기 시작했고, 그게 안토니오의 시각을 바꿔놓았습니다. 요즘 제 딸의 피아노 수업을 챙기는 것은 안토니오랍니다. 이것은 무척이나 힘이 되는 변화입니다. 만약 그러지 않았더라면 그 결과는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었을 것입니다.

 

안토니오

 이제 제 큰 딸은 어른이 되었고, 전자공학 분야 직장에서 다양한 상황들에 자신 있게 대처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항상 동료들에게 아빠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 아들은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성장하여 학교 동창과 약혼한 상태입니다.

 

안젤라

 2009년 전 큰 병에 걸렸고, 꼬박 1년 동안 병가를 냈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부부로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사명인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이제까지 해왔던 모든 활동이나 워크숍, 프로그램들을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말해야 하는 시점이었습니다. 부부로서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홀로 있었고, 저는 길을 잃었고, 남편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였습니다. 부부로서 우리에게는 이제까지 영적 친밀감을 느끼게 해주는 몇 번의 하느님 체험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고 나니 우리에게 그런 순간들은 그저 우연의 일치처럼만 느껴져서 전혀 기댈 만한 게 못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속- 

 

 

*IFE 에서 대만 CLC 부부 회원이 CLC로 살아가는  자신들의 체험을  발표한 내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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